마음 도둑 김정환

무심코 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심 불빛 때문인지 매연 때문인지 별은 보이지 않고 가로등만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김정환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멍한 눈으로 검푸른 하늘을 응시하다 동쪽 멀리 희미하게 떠 있는 별에 시선을 두고는 한참동안 그대로 있었다.

“김정환 씨.”

강유인 검사였다. 이미 간 줄 알았던 그가 건너편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직 가지 않았군요. 아니면….”

강유인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더니 말을 받았다.

“아니면 미행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김정환 씨와 헤어진 다음 계속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생각도 정리할 게 있고 오랜만에 도심 속 정원에서 잠시 쉬고 싶었죠. 김정환 씨는 거의 10분 동안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김정환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물었다.

“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저 대기권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펼쳐져 있죠. 보이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면 위험해요.”

강유인은 몸을 움직여 김정환 옆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보고서에 나온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뭐라고 나와 있던가요?”

“일상적인 이야기죠. 가족관계, 성향, 주특기… 뭐 이런 것들이고, 정부기관에 있을 때부터 일을 잘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순간 강유인은 김정환에게 생존해 있는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김정환은 군인 집안에서 자랐다. 친가와 외가를 합치면 별만 00개였다. 아버지는 합참의장까지 마치고 예편했고, 할아버지도 장군 출신이었다. 김정환은 군인의 아들 그리고 장군의 아들로서 자신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모를 정도로 엄격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까지 군 출신인 집안에서 아들은 곧 군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잘 맞지 않았던 김정환은 아버지와 충돌이 잦았다.

어렸을 때부터 푸릇한 군복이 싫었던 김정환은 조용히 혼자 지내는 일을 좋아했다. 특히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았다. 반면 형인 기환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사람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장난감 총이나 탱크 같은 무기들만 가지고 놀았다. 집안에서는 딸이 잘못 태어났다며 김정환에게 소위 남자다운 놀이를 시키려고 했지만 어느새 김정환은 그림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정환이 못마땅한 아버지 곁에는 늘 형이 있었다. 형에 비해 김정환은 부족하고 걱정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런 김정환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형은 아버지의 자랑이었고, 김정환은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이었다. 형이 총을 들고 나가서 놀 때, 불문학을 전공한 어머니는 어린 정환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시 또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곤 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무려 스무 번 넘게 이사를 다녀야 했던 김정환에게는 또래 친구가 없었다. 친구라면 집 주변의 여러 곤충과 강아지 그리고 정찰 중인 군인 아저씨들이었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한 세탁업으로 바빠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어린 정환은 놀거리를 찾아 자기만의 나라로 가곤 했다. 어떤 때는 개미 왕국의 일원이 되어 왕개미 진지를 공격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기르던 강아지와 함께 뒷산 수색에 나서기도 했다.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으나 한번 집을 나서면 지나칠 정도의 호기심과 몰입하는 성격 때문에 종종 무언가에 빠져 집에 돌아오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실제로 날이 너무 어두워져 길을 잃고 헤매다가 수색조 군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때만큼은 자상하던 어머니도 달라졌다.

늘 자신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는 그러나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김정환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형 0환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는 나지 않았지만 정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나타나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김정환의 유년생활은 형00의 날개 속에 있었다.

형은 아버지의 기대대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김정환은 형의 기숙사 생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했다. 기환은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강원도 전방에 배치되었다. 그 해 여름, 유난히 폭우가 잦았다. 3일째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기환은 진지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동료와 부하들을 구하려다 매몰되어 숨지고 말았다. 충격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더 이상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예편하게 되었다. 정환은 형을 닮고자 하는 마음과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한다. 형이 죽은 이후 아버지는 4년 동안 거의 누워서 지내야 했다.

김정환은 고독했다. 그 고독은 어려서 받은 상처 자국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무언가에 빠져 있고 싶어 했다.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움으로 인해 견디기 힘들었다. 그의 이런 몰입은 때로는 놀라울 정도의 성실함과 탁월한 창의력으로, 때로는 집착이나 엉뚱함으로 표출되곤 했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하러 가고 형도 학교에 가고 나면 정환의 친구는 기르던 강아지 해피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숲 속 탐색에 나섰던 해피는 노루를 발견하고 쫓아가다가 오래된 지뢰를 건드리면서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첫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의 죽음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몇 달 뒤,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다며 약국 심부름을 시켰는데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뱀이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설고 무서운 풍경에 푹 빠진 정환은 한참을 그곳에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을 거란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천천히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집 근처에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온 몸에 소름을 돋우며 스쳐간 차가운 무언가를 김정환은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는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성인이 된 지금,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에는 늘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눌어붙어 있었다.

가난함과 고독함의  김정환은 자신이 늘 상처받고 버려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미리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면서 지내게 된다. 첫사랑이었던 진경아와의 관계도 김정환 스스로 피하고 만 것이었다. 대신 그에게는 일이 있었다. 일에 빠져서 일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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